2014년 1월 30일 목요일

인사이드 르윈(2014), 스포있음





 코엔형제의 신작 '인사이드 르윈'을 보고 왔습니다. '인사이드 르윈'은 앞선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와 '시리어스맨'과는 전혀 다른 작법을 사용하지만, 그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으로 느껴집니다. 삶의 무기력함이든, 우연함이든, 그 책임이든 공통된 주제로 엮어 봄직도 합니다. 공통적으로 이 영화들은 천천히 들여다 보며 어떤 과장도 없이 차분히 보여줌에 충실하는 영화들 입니다.이런 양식은 마음을 두드리지만 이내 잊혀지는 일회성 교훈을 주는 영화와는 그 궤를 달리 합니다.


 '인사이드 르윈'은 그 중에서도 가장 쓸쓸한 영화입니다. 실제로 배경이 되는 뮤지션을 차용하긴 했지만, 전기영화라고는 할수 없습니다. 매번 삶에서 미끌어지고 방황하는 사람의 로드무비에 가깝습니다. '르윈'은 참으로 한심한 캐릭터 입니다. 몸하나 뉘일곳 없고, 좋아하는 여자 친구에게 낙태를 권하기도 합니다. 우연한 책임을 떠 맡게 되었을때 조차 그 책임을 끝까지 지켜나가지 못합니다. 세상에 저항하는 모습들을 전혀 보여주지도 않고, 부조리한 세상에 머리채가 잡혀 질질 끌려다니는 모습을 연상캐 합니다. 전형적이고 평면적인 캐릭터에서 벗어난 그는, 실제로 영화속에서 단 한번도 웃지 않습니다. 그러나 영화속에 간간히 빛을 발하는 유머들이 그 서글픈 감정으로 치우치게 하지않고 중심을 잡아냅니다.


 영화는 저의 개인적 체험과 만나기도 합니다. '밥딜런'이 되지못한 르윈처럼 철저히 부서지는 '개인의 꿈'이 영화에는 있습니다. 음악적 자존심을 돈앞에 내던지기도 하고, 순간 분에 못이겨 분출해내는 허영심 가득한 모습, 결국 배를 타려는 모습에서 이내 서글픈 나의 모습이 겹쳐지기도 합니다.


 영화는 감정적이지 않습니다. 굉장히 차분하고 여운의 잔잔함 또한 포크송을 닮아 있습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의 섬뜩함이나 '시리어스맨'에서 처럼의 결말의 강력한 충격 역시 있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좋은 것은 눈을 잘못 밟아 카폐에 들어가 젖은 양말을 신발속에서 몰래 꺼내 말리는 모습이 우리와 닮아서 겠지요. 혹은 세상의 부품처럼 살아가는 우리에게, 영화의 마지막처럼 우리들이 다음 세대를 열어주는 부분이 됨에 감사하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포크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있다거나, '밥딜런'에 대해 어느정도의 지식이 있다면 분명 더욱 와닿게 되는데 유리한 영화입니다. (저는 밥딜런의 전기영화 격인 'I'm not there'를 두번이상 보았었습니다.)


 오스카 아이작은 제가 처음 영화를 포스팅 했던 '드라이브'에 출연 했었더군요. 기억조차 나진 않지만 이 훌륭한 배우와 두번째 특별한 만남을 가진것에 감사합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